장사의 모래언덕
2026.5.1 노동절은 쉬지 않았는데 누군가의 입김인지 이날은 그냥 쉬었다. 그리고 떠났다. 그냥 떠나고 싶었다. 자유를 얻기 위하여? 아니다. 그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나선 것이다. 새벽 2시에 눈이 뜨였다.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머리까지 감았다. 새벽 시간에 거울 속의 나는 비장감마저 들어 보인다. 나갈 준비를 마칠 즈음에 카톡이 왔다. 떠날 차량이 도착하였다는 알림이었다.
새벽의 싸한 기운을 안은 채 지인의 차량에 올랐다. 이에 눈을 감았다. 목적지는 대구의 갓바위로 향하는 것이다. 갓바위는 한가지 소원을 반드시 들어준다는 믿음으로 떠나는 것이다. 같이 가는 지인들 역시 꿈이 있다. 환갑이 넘어도 극복하고 빌어야 할 그 무엇들이 많은 모양이다. 4시간의 운행 끝에 갓바위에 도착하였다. 이른 아침이고 비가 오락가락하는데도 갓바위 주차장에는 수많은 차량으로 가득하였고, 그들의 얼굴에는 대부분 웃음기가 사라졌고 그저 비장함마저 든다. 그런데 보통 절간의 기도처는 중년의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갓바위 기도처만큼은 두드러질 만큼 아주 달랐다. 20대 남녀, 물론 중년 여자, 중년 남자, 80대 후반에 가까운 노인들 그중 남자 노인들이 압권이다.
그중에 유독 나의 눈에 띄는 것은 6명가량의 젊은 10대 남자 고등학생이었다. 나는 호기심으로 그들 고등학생에게 이른 아침에 갓바위를 찾는 이유를 물었다. 그에 그들은 대구 인근의 고등학교 축구선수들이며, 최근 축구 성적이 좋지 않고 더 나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에 상당한 양의 비와 짙은 안개임에도 불구하고 갓바위를 찾는 사람들 속에 섞여 고단한 계단 길을 오르고 있었다. 이들의 젊은 다리는 당연히 나이든 어른들을 제치고 씩씩하게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나이에는 서로 웃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소리내어 어쩌면 소란스러울 정도인데 이들은 달랐다. 그냥 묵묵히 자신의 다리를 믿는 듯 열심히 오르고 있었다. 아무튼, 나도 고달픈 1365계단을 넘어 갓바위에 올랐다. 그리고 엎드렸다. 물론 같이 간 지인들도 엎드렸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나름의 소원, 괴로움을 털어버리는 듯 수십 번의 절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앞서 올랐던 어린 10대 고등학생들도 벌써 절을 올리고 막 걷어지는 안개 속의 아래 풍경에 취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3배 후에 약 25분여간 엎드려 있었다. 무엇을 위하여 빌었는지 소원마저 희미하였다.
하산길에는 사람들의 표정은 오르막에서 보던 그런 어두운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활짝 핀 얼굴에 가끔 웃음소리까지 산속을 메아리쳐 돈다. 갓바위의 기운은 다른가 보다. 고통스러운 인생들을 잠시나마 웃게 하였으니. 갓바위를 떠나 동해바다가 보고 싶어 가까운 포항으로 이동하였다. 포항 가는 길은 생각보다 1시간 30분 걸리는 장거리였다. 그래도 포항에 들러 그 유명한 죽도시장에 들러 회 맛을 보았다. 그리고 인근 가까운 `장사` 해수욕장으로 향하고 드디어 동해를 보았다. 장사해수욕장에서 한참 동안 동해를 바라보았고 큰 숨을 서너 번 들이마셨다. 또 다른 숨이 폐부 깊숙이 들어와 잠시나마 머리를 쉴 수 있게 하였다. 모래사장 끝에는 오랜 군함이 정박하고 있었다. 궁금하여 그쪽을 향해 나아갔고 군함이 다다르기 전 위령함이 서 있었다.
위령탑은 6·25동란 시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적의 관심을 끌기 위해 포항의 장사에 연합군이 상륙할 것처럼 미끼 작전을 시작하였는데 이내 동원된 그 미끼의 장병은 700여 명의 특공대였는데 그중에는 10대의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갑자기 가슴 한편이 저며오고 있었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수 분간 눈을 감았다. 이에 장사해수욕장 모래언덕을 향해 뛰어가는 병사들이 있었고, 그 대열 속에 10대 고등학생들이 비장한 각오로 빗발치는 총탄 속을 달리고 있었다. 눈물이 아래로 흐르고 그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 눈을 떴다. 그 자리를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에게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장사에 부는 모래바람
모래언덕을 엉금엉금 기었다.
또 기었다. 그리고 멈추었다
돌아온 9월의 장사 모래언덕은
언제나처럼 그냥 그 시절 그대로
하릴없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
나는 그저 장사의 모래언덕 너머
이름 모를 산 능선을 바라볼 뿐이다
안개는 눈썹을 어지럽게 이리저리
날아다니더니 해 오름 속으로 사라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에 의해 그냥 떠났다.
오늘 위령탑과 함께 이름도 남았다
나는 싸웠다가 떠나갔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다리는 어머니에게는
돌아가지 못하였다
어머니 저는 10대의 여린 젊음을
마쳐도 서러워하지 마세요
<장사의 학도병을 기리며>
이제 갓바위 장사의 모래언덕을 떠났다.
짧은 여정에 나의 기도가 있었고
그들의 비장함과 슬픔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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