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분석

천륜天倫과 법法

1970년대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세계정세에 기초하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때는 제법 진지하게 공산주의자들과 왜 싸워야 하는지를 가르치곤 했다. 북한에 대한 많은 것을 학교에서 배웠는데 그중 대부분은 잊었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북한은‘오호담당제’라는 제도가 있어서 5가구마다 1명의 감시원을 두어 주민들을 철저히 감시한다고 했다. 부모님이 잘못하면 자식이 당에 신고한다는 것이었다. 참 놀라운 일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흔히 천륜(天倫)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야말로 하늘이 부여한 윤리다. 부자지간은 어떤 법과 제도로도 설명할 수 없는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다. 그것은 천하에 의지할 곳이 어디에도 없던 갓난아기 시절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의지하며 생명을 부지해 왔던 데서 연유한다. 그렇게 갓 태어난 아기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면서 키워 온 부모 입장에서는 아기에 대해 가지는 마음이 어찌 평범할 수 있겠는가? 자기 몸에서 나온 자식

천륜天倫과 법法

 

1970년대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세계정세에 기초하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때는 제법 진지하게 공산주의자들과 왜 싸워야 하는지를 가르치곤 했다. 북한에 대한 많은 것을 학교에서 배웠는데 그중 대부분은 잊었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북한은오호담당제라는 제도가 있어서 5가구마다 1명의 감시원을 두어 주민들을 철저히 감시한다고 했다. 부모님이 잘못하면 자식이 당에 신고한다는 것이었다. 참 놀라운 일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흔히 천륜(天倫)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야말로 하늘이 부여한 윤리다. 부자지간은 어떤 법과 제도로도 설명할 수 없는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다. 그것은 천하에 의지할 곳이 어디에도 없던 갓난아기 시절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의지하며 생명을 부지해 왔던 데서 연유한다.

 

그렇게 갓 태어난 아기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면서 키워 온 부모 입장에서는 아기에 대해 가지는 마음이 어찌 평범할 수 있겠는가? 자기 몸에서 나온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은 사람뿐 아니라 짐승조차 그러한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부모가 잘못을 했다고 해서 신고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없다면 그것을 과연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만든다. 예측 가능한 사회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모든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믿음에 균열을 만들기를 원한다. 믿음이 강해지면 자신의 권력을 멋대로 행사하기 어려워진다. 북한의 독재 권력은 주민들 사이에 불신의 싹을 만들어 냄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만든다. 온 나라가 감시 국가 상태가 되었다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가정이다. 그중에서도 부모 자식 간의 신뢰는 기초 중의 기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 사이에 신뢰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면 가정은 순식간에 끔찍한 지옥이 될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믿지 못하고 자식이 부모를 믿지 못한다면 가정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의심 가득한 눈초리만 던지게 된다. 이쯤 되면 서로가 서로의 언행을 감시하게 되고, 결국 들어가고 싶지 않은 가정으로 변한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지 못하면 상대방을 의심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이 무너질 뿐 아니라 법과 제도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신뢰가 무너짐으로써 생기는 사회의 문제점을 공자 역시 주목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논어에 남아 있다.

 

섭공(葉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정직하게 행동합니다. 자기 아버지가 양을 훔쳤다면 자식이 그것을 신고하고 증언합니다." 그러자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네 젊은이들의 정직은 좀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겨 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 줍니다. 사실 정직하다는 것은 그 가운데 있는 것이지요.”

섭공(葉公)은 원래 초나라 사람으로 섭읍(葉邑)을 자신의 봉지(封地)로 하고 있었으므로 섭공으로 통칭 되었다. 여러 기록을 종합해 보면 그는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도 좋았고, 어떤 점이 미래에 문젯거리가 될 것인지도 간파할 수 있었으며, 반란을 평정하여 민심을 안정시키기도 했다. 공자가 섭공을 만난 것은 그러한 세간의 평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공자가 만난 섭공은 전혀 다른 모습의 정치인이었다. 그는 백성을 명확한 기준으로 다스리고 싶어 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조금이라도 법을 어겼다면 아무리 아버지라 해도 신고를 하고 증언을 서는 것이 그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정치였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정직'의 개념도 달랐다. 섭공은 법과 제도가 규정한 것을 모든 사람이 철저하게 지키는 것, 그것이 설령 부자지간처럼 가까운 사이라도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도록 하는 것을 정직의 조건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공자는 그것을 정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자가 생각한 정직은 하늘이 부여한 이치를 따르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자식을 숨겨 주고 자식이 아버지를 숨겨 주는 것, 이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천리(天理)였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이치인 천리를 잘 따르는 것이 정직의 전제 조건이었다.

하늘의 이치인 천리를 따라 만들어진 인간 사이의 질서가 천륜(天倫)이다.

법과 제도에 앞서 천륜이 있으므로 그것을 따르는 것은 하늘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니 가장 정직한 것은 법과 제도보다는 천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공자가 불법을 무조건 눈감아주자고 하는 것처럼 이해하면 곤란하다. 위에서 양을 훔쳤다고 했을 때 '()'라는 글자를 쓰지않고 '()'이라는 글자를 쓴 것은 의도적인 도둑질이라기보다는 실수로 남의 집 양이 우리 집 양 무리에 섞여 들어왔다는 어감이 강하다. 그 크기와 정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부모자식 간에 신고를 해서 법적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는 점을 고려하라는 것이다. 이런 논쟁은 이미 고대 중국에서부터 동아시아 사회에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대표적인 논제을 예로 들면 이런 것이 있다. 천하의 명군으로 이름난 {순임금}이 만약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행동 할까라는 질문이다. 법에 의해서 아버지를 처벌할 것인가 아니면 천륜을 따른다는 명목으로 아버지를 처벌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 질문의 핵심이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 내가 순임금 입장이라면 왕위를 벗어던져 버리고 한밤중에 아버지를 등에 업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바닷가로 도망갈 것이다." 그것은 법과 천륜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 수 없는 한 인간이자 왕으로서의 고심을 반영한 대답일 것이다.

 

그렇지만 끝내 아버지를 내 손으로 처벌하기보다는 아버지를 모시고 사회 공동체를 떠나는 것으로 결론을 드러낸다. 그것은 법을 어기는 순간 공동체 의지가 어렵다는 점도 알고 있지만, 천륜을 거부하는 순간이 역시도 공동체의 기본적인 신뢰를 허물어 버림으로써 감시와 독재의 시대로 접어든다는 점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삶은 항상 대립 속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과 답변을 하면서 제3의 수많은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천륜보다 법과 제도를 우선하는 요즘 한국정치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 줄리 만무하다. 불신으로 인해 서로가 투쟁하는 사회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사회가 후대에 남길 좋은 정치의 유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