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인류학 박물관에서 아프리카 미술 작품들을 접하게 됐고, 당시 이들 작품이 지닌 독창적인 생명력과 표현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춤, 가면, 조각 등에서 나타나는 원시적이면서도 직선적인 표현 기법과 강렬한 원색의 사용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그러한 피카소의 작품이 오늘날 전 세계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니, 결국 그 전 세계인 영향의 뿌리는 아프리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프리카 미술은 강력한 생명력과 신앙심, 그리고 희망과 공포라는 인간의 근원적 감정들을 예술적 에너지로 승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갤러리계에서 아프리카 미술을 가장 선도적으로 알려온 곳이 바로 ‘갤러리 통큰’이다. 정해광 관장은 지난 40여 년 동안 아프리카의 조각 작품들을 수집해 현재 국보급 앤틱 조각과 미술 작품 등 1,500여 점에 이르는 소장품을 가지고 있으며, 아프리카 미술에 관한 연구에 관해서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향후 아트센터를 2~3년 내 완공할 예정이다. 전체 규모 700평, 250억 원의 많은 돈이 들어가는 대형 예술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정해광 관장으로부터 아프리카 예술의 특징과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스페인 벼룩 시장에서의 충격적 경험
정 관장은 애초 국내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고 이후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 학부 시절 그는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부산미문화원 방화 사건 분위리로 미국 비자 발급이 여러 차례 거절됐다. 이후 그는 1989년 정치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했고, 현지에 도착한 뒤 약 4개월 만에 어학 과정을 통과했다. 이 시기는 그의 삶의 새로운 여정이라고 할 만큼 큰 의미가 있었고, 결국 1997년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 마드리드의 엘 라스트로(El Rastro)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아프리카 조각상이 정해광 관장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됐다.
“기묘한 분위기를 지닌 작품 하나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 노신사가 보리수로 보이는 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긴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이었습니다.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마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듯한 깊은 울림과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번뇌에서 벗어난 듯한 그의 평온한 표정이 철학을 공부하던 제 마음을 크게 움직였습니다. 저는 그 작품을 통해 오랫동안 치열하게 고민해 온 휴머니티, 곧 인간성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작품을 곁에 두고 날마다 바라보며, 저 역시 그와 함께 더 깊은 성찰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철학을 연구하며 인간 본성의 핵심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학계의 현학적인 담론이나 전문 서적에서는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 아프리카 조각상을 접하면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인간성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미술 작품들이 인간 존재의 근본적 비밀을 푸는 열쇠를 담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작품은 바로 카메룬 바문(Bamun)족의 청동 잔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 작품이 대외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녔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속에서 읽히는 철학적 메시지에 강하게 이끌렸다고 한다. 엎드린 자세를 취한 남성의 꼬리뼈 부분에 꼬리이자 뿔처럼 생긴 거대한 잔이 솟아 있었다. 그리고 위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잔 바깥으로는 다양한 문양이 빼곡히 조각돼 있었다. 그 조각들의 면면을 들여다보자 꼬리뼈에서 잔이 시작되는 좁은 지점을 기점으로 인간과 유전자가 20퍼센트 일치하는 10억 년 전의 선충에서부터 40퍼센트 일치하는 5억 년 전의 곤충, 그리고 2억 년 전의 파충류까지 순서대로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때부터 정해광 관장은 선현들의 지혜가 담긴 말씀을 수집하듯 아프리카 조각들을 체계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귀국 후 본격화된 아프리카 미술의 길
1997년 스페인에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교수 자리의 제안을 거절하고 더욱 아프리카 예술품에 빠져들었으며, 마침내 2008년 인사동에 ‘통큰 갤러리’를 오픈했다. 그런데 마침 그해에 아프리카 출신의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이를 기회 삼아 <아프리카 미술로 오바마 읽기>라는 전시를 기획해, 오바마의 삶을 아프리카 미술과 결합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선보인 바 있다. 당시 입장료는 3천 원으로 책정됐으며, 약 3개월 이상 전시가 이어지는 동안 7천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하는 대박을 경험했다.
전시 기간 중에는 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관람한 뒤 인상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학생은 전시를 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아프리카는 전쟁이 많고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그림을 보니 마음이 부자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는 것. 정 관장은 그 말에 크게 동감했다. 그 자신 역시 힘들게 아프리카를 오갔지만, 마음이 부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2009년 무렵 세계적인 팝스타인 마이클 잭슨의 사망 이후, 그는 ‘마이클 잭슨 이해하기’라는 주제의 전시를 기획해 선보였다. 이 전시는 마이클 잭슨의 음악 세계를 단순한 감상이 아닌 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를 시각예술과 연결해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그는 학창 시절 농악을 하면서 음악 이론과 철학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왔다. 음악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사유와 철학을 담고 있는 영역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이러한 전시를 기획했던 것이다. 결국 이 두 가지 전시회는 갤러리 통큰의 정체성과 차별화를 보여주는 계기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에도 꾸준하게 아프리카 작품을 모아왔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만은 않았다.
“저는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들여오기 위해 여러 아프리카 국가를 오가며 현지 작가들과 꾸준히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오랫동안 쌓아온 철학적 지식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회화를 공부하고 분석해왔습니다. 또한 그 성과를 책으로 정리하면서, 갤러리스트이자 연구자로서 두 역할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해외의 여러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서점과 헌책방,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아프리카 회화 관련 자료를 모아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참고할 만한 자료가 매우 부족한 편입니다. 어렵게 원하는 자료를 찾더라도, 내용이 단순한 이력 소개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직접 길게 설명하거나, 이를 둘러싼 담론이 충분히 축적된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지닌 철학적·미학적 지식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의 작품 세계를 가능한 한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미술을 위한 새로운 거점
다만 그는 조각 작품에 관한 한 국내의 개별적인 소비자의 판매 여건이 아쉬운 점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아파트의 구조상 조각을 들여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높이가 약 1미터인 조각상을 전체적인 시선으로 감상하려면 바닥보다 높은 받침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관람자가 작품의 상단만 내려다보는 방식으로는 형태를 온전히 감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받침대와 조각상을 함께 배치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층고가 필요하며, 통상적으로는 약 4미터 안팎의 천장 높이가 요구된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의 일반적인 아파트 구조에서는 조각 작품을 가정집 내부에 설치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는 향후 본격적인 아프리카 예술 작품을 위한 아트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매우 큰 프로젝트이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아트센터의 건립이 그의 인생에서도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새로운 희망을 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시 요청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시는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기획과 대관에 따른 비용 역시 결코 작지 않습니다. 앞으로 아트센터를 설립하게 된다면, 전국의 문화예술회관이나 미술관과 연계한 전시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트센터 역시 쉽게 흔들리지 않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또한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제 작업이 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아내나 아이들, 혹은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오랫동안 이어질 가능성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게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 미술이라는 한 분야를 40여 년 동안 꾸준히 지켜왔다는 사실입니다. 아프리카 미술을 통해 너도나도 생각이 부활되고, 즐거움이 부활되고, 모든 것이 새롭게 부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