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미술로 인간 이해하기_ 리비 루게(Liby Lougue 1987~_ Burkina Faso)
리비루게는 아프리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르키나파소의 작가이다. 위로는 사하라사막이 있고, 왼쪽에는 말리, 오른쪽에는 니제르, 아래는 가나로 둘러쌓여 바다가 없다. 꽉 막혀있는 나라다. 그의 그림에 자동차, 비행기, 에드벌룬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탈출 혹은 자유로움에 대한 은유가 탈거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느 아프리카 작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물고기가 자동차처럼 거리를 헤엄치고 하늘에서 유영한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고기처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픈게 작가의 지론이다. 의미를 더 유추해보면, 종족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먼 조상이 '메기'라는 물고기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결국 세상이 변해도 그 뿌리를 잃지 말자는 속내를 그림에 담고픈게 아니었을까!
알 수 없는 힘이 작동되고
항상 그러하듯이 아프리카 작가와의 만남은 드라마틱하다. 아이버리코스트의 아부디아(A. D. Aboudia)와 부르키나파소의 리비 루게를 두고 3년쯤 저울질하다가 마음을 정했을 때, 코로나가 터져 한국을 나갈 수 없었다. 코로나가 끝났을 때, 아부디아의 그림은 열배가 넘게 뛰었다. 런던의 사치(Saatchi) 갤러리가 공들인 작가였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난 두 작가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그 이유는 마음 한 구석에 리비 루게로 향하던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바스키아(J. M. Basquit) 계열의 반추상적 팝아트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카메룬의 음파두(J. M. Dooh)에 빠졌고, 풋사랑마냥 리비 루게에게 마음이 쏠렸지만, 만나는데에는 장애가 있었다. 부루키나파소에 연이어 쿠테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2023년 가을, 17년만에 부르키나파소를 찾았다. 가슴이 아팠다. 세상이 후퇴한 것 같았다. 그 많던 골동품 가게들은 자취를 감췄고, 그나마 있던 버스들은 찾기도 힘들었다. 쿠테타의 그 모든 불편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으로 남은 것이다.
리비 루게는 수도인 와가두구가 아닌 보보디울라소에 살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400km 정도면 가볍게 버스를 이용할 텐데 자신이 없었다. 시간도 그렇지만, 육체적으로 건강한 내가 아니었고, 2000년대 초반의 부르키나파소가 아니었다. 환경이 더 열악해진 것 같았다. 쿠테타라는 상황은 인간의 삶은 물론 국가의 시스템을 붕괴시켜 버렸다. 환전을 위한 은행은 드물었고, 환전에 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다행인 것은 느리지만 와이파이가 작동했기에 호텔서 비행기 표를 예매할 수 있어 아주 산뜻하게(?) 보보디울라소에 갈 수 있었다.
작가는 말이 아닌 마음으로
역시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곳이 아프리카이다. 여러번 일정표를 보냈는데도 리비 루게는 공항에 없었다. 매점의 여인에게 핸드폰을 빌려 전화를 걸었다. 도착시간을 착각했단다. 다행인 것은 보보디울라소가 부르키나파소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아무리 멀리 있어도 30분이면 공항에 도착이다. 사실 아프리카에서 시간을 약속하고, 시간의 길이를 재는 것은 상당히 무의미한 일임을 잘 알기에 마음을 조급히 먹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만남은 보통의 아프리카식으로 시작했다.
여느 작가들처럼 그의 작업실에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 팔려야 그림을 그리고, 주문을 받아야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보여주니 그림이 분수처럼 나온다. 자기가 소장하고픈 그림을 꺼내오다 보니 제법 많은 그림이 쌓였고, 난 그 자리에서 모든 그림을 샀다. 작가와의 친밀감은 더 깊어졌고, 다음날 가족과의 저녁 약속을 잡는 것으로 첫날의 이벤트에 종지부를 찍었다. 마지막까지 방심하면 안됐는데 미리 호텔을 체크안한게 문제였다. 그 큰 호텔방의 창문은 너무나 작았고, 방충망도 없었다. 창문을 열수가 없었다. 20년전 말라리아에 걸려 병원신세를 한달간 진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리비 루게는 영어를 거의 못했다. 나의 어설픈 불어와 영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작가 사생활은 물론 작품얘기에 시간 가는줄을 몰랐다. 난 아직도 작품이전에 작가의 인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행복하기 위해서, 즐거운 인생을 위해서 교수됨을 포기하고 이길로 들어섰는데 가끔은 작가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의사 소통은 원할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품성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많은 작가를 만났고, 금전적인 거래를 많이 했기에 사람의 밑바닥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품 이야기를 할때 그 진솔한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리비 루게 그림 읽기
A. 진정한 보스란!
리비 루게는 캔버스의 큰 화면에 종종 한사람만 크게 그려 놓는다. 주변에는 인간의 욕구를 대변하듯이 탈거리, 먹거리, 술병, 예쁘게 차려 입은 여자가 자주 등장한다. 문제는 이런 욕구의 문제를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촛점이 맞춰지는 것 같다. 결국은 '함께'에 관한 이야기이다. 진정한 보스란! 좋은 차를 혼자 타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타고, 혹은 빌려주기도 하고, 좋은 음식도 혼자 독식하는게 아니라 여럿이 함께 먹어야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보스인데 세상은 그렇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화면속에 등장하는 수 많은 사물들 숫자만큼 수 많은 욕구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이것은 비단 작가만의 고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B. 우정에 관하여
리비 루게의 그림에는 유난히 많은 술병들이 등장한다. 우리한테는 혼술이 흔하지만, 아프리카에서 혼술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서인지 술병을 양 옆에두고 두사람이 존재한다. 저너머에는 술자리를 귀신처럼 알아차린 친구들이 몰려들고 있다. 어느 그림에는 혼자 술을 마셔 안경마저도 헤롱거리는데 어김없이 저 멀리서 술병을 든 친구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다. 애인과 헤어진 친구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함이다. 친구는 물론 바닥에 뒹구는 술병도, 음악마저도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기쁨만이 나눔의 대상이 아니라 슬픔만큼은 여럿이서 꼭 함께 나누자는게 리비 루게 그림 속 풍경이다.
C. 사랑에 관하여
리비 루게의 그림에는 많은 인물들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하트 모양의 안경을 끼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남자의 안경에는 아예 'LOVE'라는 알파벳을 노골적으로 써 넣었다. 애인을 향한 마음의 모습이란다. 어떤 그림에는 하트 모양의 안경을 쓴 운전자의 모습이 다급해 보인다. 거리에는 차가 많아 속도를 내지 못하고, 덩달아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창문에 매달려 돈을 달라고 한다. 하지만 장애가 되지 않는다.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데 무엇이 보일까! 그래서 선그라스의 새겨진 하트는 사랑의 열정같기도 하고, 붉은 색은 조급한 마음의 표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D. 하모니를 위하여
언발란스한 그림이 눈길을 끈다. 안경 알의 색이 서로 다른게 보이고, 신발들도 짝짝이가 많다. 색도 다르지만 디자인이 다른 신발도 신고 있다. 양말의 색도 가지각색이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있고, 마음은 항상 두갈래 길에서 머뭇거리고 있다"고, 결국은 서로 다른 두 세계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표현한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잘 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기쁨만큼 두려움이 엄습하고, 만나면 헤어짐을 걱정하고, 멋진 그림을 얻으면 소장해야할지 팔지를 고민한다. 그 두가지 모두를 자신의 세계로 품으라는 얘기를 한다. 모든 것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면서 둘이라는 것이다.
E. 자동차는
여느 아프리카 작가들처럼 리비 루게의 그림에도 탈거리가 많이 등장한다. 자동차는 기본이고 헬리콥터도 보인다. 어떤 이는 손가락의 차 열쇠를 자랑하면서 노골적으로 누군가에게 구애를 한다. 한국에 '차타'라는 말이 유행했었기에 그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차가 있으면 멋진 여자는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물론 차는 어디론가로 떠나기를 바라는 유목민의 유전자 모습일수도 있다. 그러나 리비 루게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여러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할하게 하면서 주인공되기를 좋아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심리적 모습도 담겨 있다.
*tip1. 리비 루게는 어떤 작가인가?
아프리카 작가들을 좋아하는 이유 한가지를 꼽는다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는 점이다. 작가는 세계관이 강한 직업이다. 특히 한국 작가는 더욱 그러하다. 그 세계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자신의 작품에 틈을 내주지 않는 작가들을 한국에서 많이 경험했다. 작품을 사면 인간적으로 친해지기도 하는데 유독 작품에 대한 이야기에선 콜렉터의 몫이 없다. 좀 심하게 말하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 제공이나 작품해석에 대해서 상당히 폐쇄적이라는 말이다. 가격이 높은 작가일수록 절대영역은 극에 달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아프리카 작가들 대부분은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콜렉터나 기획자의 여러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다음 그림에는 나의 이야기가 맛나게 풀어진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마치 비빔밥처럼 작가는 요리사가 되어 여러 아이디어를 혼합시켜 독특한 맛을 내는데서 인간미도 더 느껴지고, 작품에도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특히 리비 루게는 더욱 그런것 같다. 1년사이에 크고 작은 그림 90여점을 모았으니 말이 필요 없는게 아닌가! 날이 갈수록 그림은 나나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진보에의 행렬 속에서 좀 더 큰 빛을 찾아 매진하는 모습이 보여서 보람도 느낀다. 2-3년 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작품구매에 쉽게 마음을 여는 콜렉터들도 많아질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탄자니아의 헨드릭을 경험해서 쉽게 예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아이디어 삼아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리비 루게의 앞날은 밝다. 내 마음도 덩달아 밝아질 것을 기대해본다.
*tip2. 왜 리비 루게인가?
난 팝아트가 좋다.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바스키아 계열의 반추상적 팝아트도 좋고, 키스 해링 계열의 만화적 팝아트도 좋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철학을 전공해서인지 반추상적 팝아트를 볼때면 더욱 많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리비 루게의 그림에 눈길이 자주 간다. 마치 보물지도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것처럼, 호기심과 기대감 속에서 마음을 설레이게 만드는게 리비 루게의 그림이다. 광주아트페어에서 하나의 보물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안고 있는 그림에서 눈길을 끄는건 하트 모양이지만 그게 아니었다. 여자를 안고 있는 남자의 신발이 짝짝이다. 처음에는 여인에 대한 자신의 불확실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자의 한쪽 신발의 색과 여자의 뾰쪽 구두의 색이 같다. 아하! 내 안에 그녀가 있다는, 자신과 사랑하는 이와의 하모니를 위해 매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보물을 발견했다. 아주 유쾌하게 표현된 그의 그림은 여느 그림과는 다르게 가벼운 듯 하면서도 의미있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눈길이 자주 간 만큼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런 그림은 경험에서 우러나오겠지만, 정말 치열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나오기가 힘든 그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처럼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재능이다. 사실 우리도 어렸을때 이렇게 그렸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예전에 그렸던 어린 시절의 그림을 더이상 그리지 못한다.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속세의 비밀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이 어린이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대단한 난제이다. 어른이 되어도 어린 아이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일을 리비 루게는 하고 있다. 그림 놀이에 빠진 어린 아이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면서 어른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리비 루게! 그래서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난 것처럼 즐겁고 반가운 마음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기도해본다.
*tip3. 리비 루게에게 응집된 해학의 힘
세번째 오더내린 그림을 받고 리비 루게의 정체(?)를 더욱 더 잘 알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웃음은 어떤 의미일까? 절박한 사람들에게 신나는 일은 무엇일까? 리비 루게는 아프리카라는 고단한 현실 속에서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그림속 해학적인 모습을 보면 이 끝모를 질문에 종지부가 보이는 것 같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하거나 가족이 영영 떠나도 그곳에는 가족이나 친구만 있는게 아니라 떠난 이와 함께 탔던 차가 있고, 함께 마시던 술집이 있고, 함께 들었던 음악이 남아있다. 육신은 떠났지만, 마음을 나누었던 흔적과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데서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은 문제가 될 수 없다는게 리비 루게의 지론이다. 그래서 함께 있을때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시간에 구속 될 필요가 없고, 누군가와의 사랑때문에 그리고 죽음때문에 괴로워하지도 말자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가난함이나 절박한 상황에 구속되지도 말자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 그래서 내 옆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어 기억과 추억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사실, 그 단순한 사실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지금의 어려운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또한 자신을 늪속에 빠뜨리지 않는 용기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 저기에 글자로, 숫자로, 문양으로 표현된 그림이 의지나 구호로 보인다면 리비 루게의 그림은 한층 더 즐겁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PS. 리비루게의 화려한 단색(colorful mono tone)
채우기보다는 덜어내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 논문을 쓰거나 광고 카피를 만들거나 혹은 그림을 그릴때 색을 절제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의 사용은 한국의 화가는 물론 아프리카 작가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모노 톤의 그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색에 대한 탁월한 능력이 없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리비 루게를 눈여겨 보는 것도 바로 이점이다. 단색화에 익숙한 한국의 콜렉터들도 이점을 높이 사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여느 아프리카 작가와는 달리 공간을 꽉 채우지 않고 여백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콜렉터들의 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림의 내용도 이질적이지 않다. 유럽을 여행했으면 어디선가 쉽게 봄직한 거리의 악사들... 어둠이 깔리기 일보직전 저녁 노을이 극대화 될 즈음 소리는 색을 타고 주변을 점점 더 불그스름하게 물들인다. 저녁노을이 색의 주체인지, 소리가 저녁노을을 재촉하는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리비 루게의 특기(?)다. 사실 모노 톤의 그림에서는 연주하는 이와 연주를 듣는 이 모두가 화면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컬러가 다채로웠다면 시선이 악사에게만 고정되었을텐데, 모노톤이라서 그런지 시선이 악사에게만 멈추지 않는다. 악사가 차지하는 화면의 크기가 커도 주변의 연인들이나 가족들 심지어 거리의 차들에게도 시선이 간다. 모두가 각자의 배역을 소화하는 주인공처럼 보인다. 심지어 건물들도 무대의 세트장처럼 하나의 완벽한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다.
Epilog _리비루게를 한국에 소개한 지 3년만에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 두군데에 그의 그림이 실렸다. 작품도 좋았지만 운도 따랐고, 이후 작가는 아주 발빠르게 미술시장을 파악하면서 컬렉터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인기 연예인이 팔로워 숫자가 많아지면, 유명세를 얻듯이 작가에게 콜렉터는 전투병과도 같은 최대의 후원자이다. 물론 기획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삼박자가 이렇게 빠른 시간에 발맞춰진 것은 드믄 일이다. 그래서 작가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여느 작가와는 달리 수용성도 좋다. 기획자나 콜렉터가 그림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내놓아도 그는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림으로 화답한다. 가능성이 현실로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이런 자세를 십년쯤 유지하면 그는 분명 대가가 될 수 있다. 아직 마흔이 안넘었지만, 힘과 노련함이 하모니를 이뤄가고 있기에 그에게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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