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단 한 번도 쓸모없는 땅이었던 적이 없다. 북한 출신 세계적 건축가 고 김석철은 생전에 "한반도는 보물이다"라는 유언을 남긴 바 있다. 그는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죽음의 땅이 아니라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21세기형 신개념 도시'의 최적지로 보았다. 남북 간의 이념전쟁의 파생물인 육이오는 증오와 분열의 상징으로 비무장지대를 탄생시켰다. 이것은 한반도를 갈라놓은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을 오랫동안 쓸모없는 땅처럼 방치했다. 하지만 자연은 그 땅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보물의 땅으로 만들어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윤석열 내란을 극복한 이재명 정부는 철저한 실용주의적 평화론를 펼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거장 김석철의 설계도를 현실로 옮길 담대한 프로젝트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제 비극의 땅 DMZ에 유엔본부를 건립하여 세계적인 명소로 키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DMZ를 새롭게 변화시켜야 할 시대적 사명을 인식한다면 우선 그 땅의 상징적인 의미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 남북을 갈라놓은 248km의 비극의 현장 DMZ는 이제 역설적으로 70년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구상 최고의 자산이 되었다. 이곳에 ‘유엔본부(제5사무국)’을 유치하는 것은 이 '보물'에 국제적 공신력이라는 호흡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DMZ는 단순한 접경지가 아니라, 전 세계의 자본과 인재가 모여드는 '다국적 평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이 사업을 통해서 북한은 완벽한 체제 보장을, 남한은 북방으로 뻗어 나갈 전초기지를 확보하는 최상의 윈윈(Win-Win) 전략을 실현할 수 있다. 또한 남북이 함께 북방으로 뻗어 나갈 전초기지를 제공하는 최상의 전략인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멋진 계획도 한반도를 위해서 실현되어야 가치가 있다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남한이 북한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DMZ는 정전협정에 의해 관리되는 구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UN 기구 유치를 위해서는 북한의 전폭적인 찬성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경색된 남북 관계에서는 논의 자체가 시작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정전협정을 풀어내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왜냐하면 DMZ의 관할권은 UN군 사령부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민간 성격의 UN 사무국을 세우려면 정전협정의 수정이나 새로운 법적 지위 부여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이 지역에 규모가 큰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많은 안전 문제가 돌출하게 된다. 그동안 양측이 위험 요소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이명박정권, 박근혜정권, 윤석열정권 등을 거쳐 오면서 북한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함에 따라 점점 적대적인 정책을 증폭시켜왔다. 급기야 김정은은 남한을 다시 주적으로 환원함으로써 남북화해 정책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발적인 군사 충돌 위험이 상존하는 곳에 국제기구 직원들을 상주시키는 것에 대한 국제적인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유엔기구를 유치하는 계획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와 경쟁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UN 제5사무국 유치를 희망하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있다. 태국, 몽골 등이 강력하게 유엔기구를 유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국가들과의 외교적 경쟁도 넘어야 할 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DMZ에 유치해야 이유는 분명 있다. 한반도의 허리를 끊어놓은 비무장지대는 역설적이게도 전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군사력과 가장 고요한 생태계가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 제기된 이재명의 ‘실용주의적 통화통일’과 북한이 고수하는 ‘자주적 사회주의’는 결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양극단의 노선을 평화공존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DMZ 내 유엔본부(제5사무국) 유치일 것이다.
다음으로 DMZ에 유엔기구를 설립한다면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북한의 갈등관계가 지속되고 있지만 DMZ은 양측의 적대성이 틈타지 못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실용주의적 통화통일의 마중물로서 ‘안전한 투자처’로서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이재명식 실용주의 통일론의 핵심은 급진적 흡수통일이 아니다. 일 단계로 평화공존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교류를 통한 점진적 통합과 실리 추구를 주요 전략으로 본다. 평화통일이나 경제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측 가능한 안전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DMZ에 유엔본부가 들어서면 이 지역이 국제법적으로 보호받는 ‘중립지대’이자 ‘국제 외교의 심장’이 됨을 의미한다. 이 프로젝트는 자본 투입을 주저하게 만드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단번에 제거하는 강력한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유엔의 존재는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의 노동력 및 자원과 결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상쇄하는 최후의 보증인 역할을 할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강조하는 자주적 사회주의 노선은 외부 세력에 의한 체제 전복 우려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북측이 DMZ 내 유엔기구 설치를 수용한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국제사회가 북한의 체제 주권을 인정하고 영구적인 평화 상태를 공인하는 명분이 된다. 유엔본부는 단순히 서구 자본주의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전 세계의 다양한 정치 체제가 소통하는 다자주의의 상징이다. 북한이 주권 침해의 위협 없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될 수 있는 ‘안전한 통로’를 확보하는 셈이다. 자주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국제 지원과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타협점이 바로 DMZ 내 국제기구의 상주라고 볼 수 있다.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DMZ는 '단절'과 '공포'를 상징한다. 하지만 유엔본부 유치는 이 공간을 '연결'과 '조화'의 공간으로 리디자인하는 작업이다. 물리적 접점으로서 남북의 경계선 위에 세워진 유엔본부는 양측이 이동의 제약 없이 만날 수 있는 중립적 회합 장소가 된다. 또한 경제적 완충 지대로서 이곳을 기점으로 형성될 국제 평화 도시는 남측의 실용적 경제 논리와 북측의 사회주의적 질서가 충돌 없이 실험될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다.
만약에 DMZ 공간에 유엔기구가 설립된다면 어떤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은 정치적인 효과 못지않게 경제적 효과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남북한 모두에게 실용적이고 실리적인 이점을 창출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서로의 결핍을 메우는 완벽한 퍼즐"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핵'을 넘어선 '경제 핵폭탄'으로서 남북 연합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이다.
첫째, 우선 북한의 자원과 남한의 기술의 긍정적인 결합을 통해 공급망 패권을 장악할 수 있다. 즉 북한의 희토류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남한의 반도체·배터리 기술과 결합하는 시나리오를 거론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자원 개발이 아니다. 미·중 갈등 속에서 한반도가 독자적인 첨단 산업 공급망을 갖춘 세계 유일의 국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 계획은 '경제 안보' 전략으로 격상시켜서 미래 한반도의 전망을 격상시키는 기능을 하게 된다. 북한이 핵에 집착하는 이유는 체제 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핵은 방어의 수단일 뿐 풍요의 수단은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구상하는 '통화통일'과 '실용주의 경제협력'은 남한의 자본·기술과 북한의 자원·지정학적 위치를 결합해 동북아의 공급망을 장악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둘째, DMZ 유엔본부 건립은 노동력과 자본의 결합으로 '제조업 르네상스'를 실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요즘 남북한은 모두 나름의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봉쇄로 인해 기술력이 현저하게 낙후되어있다. 남한 또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 그리고 고임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두 체제의 화학적 결합이 가능하다면 저렴하고 우수한 북한 노동력은 고령화와 고임금으로 위기를 맞은 남한 제조업에 '제2의 도약기'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베트남이나 동남아로 떠났던 공장들이 한반도 내륙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즉, 남북이 함께 부를 창출하는 '공동 번영의 엔진'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남북한의 결합은 인구 절벽 문제를 해소하여 국가 소멸 위기에 대한 유일한 출구를 찾을 수 있다. 현재 남한의 가장 큰 위기인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어떤 복지 정책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남북 화합과 공존을 기초로 하는 평화 프로젝트에서 인구 구조의 재편은 단순히 머릿수의 증가가 아니다. 이것은 역동적인 생산 가능 인구를 확보하여 국가 소멸의 위기를 막는 '구국의 결단'이 될 수 있다. 남과 북이 경제적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 한반도는 인구 8,000만의 거대 시장과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 그리고 대륙을 잇는 물류망을 동시에 갖게 된다. 이는 일본을 추월하고 독일,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급 경제 강국으로의 도약을 의미한다. 김정은 정권에게 이것은 체제 유지를 넘어선 '민족의 찬란한 부흥'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될 것이다.
넷째, 지정학적 리스크를 '물류 허브'로 리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다. 섬처럼 고립됐던 남한이 북한을 통해 대륙(TKR, TSR)과 연결되는 순간, 한반도는 동북아의 종점이 아닌 '유라시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DMZ 내 유엔본부는 이 거대한 물류 네트워크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국제 관제탑'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 이재명의 실용주의와 김정은의 자주주의의 결합의 상징물로서 DMZ의 유엔기구 건설의 비전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하다. 유엔본부는 특정 국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 국제 평화의 성역이다. 이곳이 한반도의 허리에 자리 잡는 순간, 남북은 서로를 공격할 명분을 잃는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군이나 남측의 위협으로부터 국제법적인 '영구적 안전 보장'을 받는 셈이며,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강조하는 '자주적 사회주의'를 가장 안정적으로 지탱해 줄 토대를 확보하게 된다. 남측 역시 안보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이를 복지와 민생 경제로 전환하는 '실용적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
북한의 '강한 자주' 정신은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는 강력한 민족적 동력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남한의 '유연한 실용주의'가 결합한다면, 한반도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변방이 아니라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주역이 된다. DMZ에 세워질 유엔본부는 이러한 '강한 코리아'의 심장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 남북은 군사 훈련이 아닌 공동의 경제 개발을 논의하고, 전 세계 외교관들이 평화를 배우기 위해 한반도를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북한이 추구하는 '자주'를 완성하는 길이며, 남한이 추구하는 '번영'을 영속화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DMZ 내 유엔본부는 그 거대한 여정의 시작점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을 걱정하는 분단국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지구촌 물류와 평화의 컨트롤 타워'로 리브랜딩된다. "한반도는 보물이다"라는 확신이 정책이 되고 현실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분단을 끝내고 위대한 '한반도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적대적 감정은 정치적 산물일 수 있지만, 민족의 생존과 번영은 역사적 필연이다. 김정은 정권이 지금 비록 남측에 등을 돌리고 있으나, 우리가 제시하는 모델이 북한의 생존을 보장하고 민족의 위상을 세계 최강으로 올리는 설계도임을 증명해야 한다. DMZ 내 유엔본부는 그 신뢰의 첫 단추이자, 분열된 이념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평화의 브랜딩'이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적 접근과 국제사회의 지지가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주적'이 아닌 '동반자'로서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