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영/산업

Global Company 감로수산 정경섭 회장

대한민국 김 수출 1조 4천억 신화의 산증인 “앞으로도 해남의 김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김 수출액은 2025년 11억 달러(한화 1조 4,300억 원)를 넘어서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한마디로 ‘역대급 수출 실적’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점은 여기에서 전라남도의 수출량이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무려 4억 3,200만 달러(한화 5,800억 원)으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전남의 놀라운 수출 실적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바로 46년째 김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감로수산의 정경섭 회장이다. 그는 대한민국 김 산업의 산증인이자 대부로 불린다. 그간 해남군 수협 이사, 대의원, 어촌계장을 거쳐 해남군 수산조정위원회 위원, (사)한국마른김생산자연합회장, (사)한국김산업연합회장 등을 역임하며 해남을 출발로 전남 전체 김 산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2021년 12월부터 시행 중인 ‘김 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

Global Company 감로수산 정경섭 회장
대한민국 김 수출 1조 4천억 신화의 산증인
“앞으로도 해남의 김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김 수출액은 202511억 달러(한화 14,300억 원)를 넘어서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한마디로 역대급 수출 실적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점은 여기에서 전라남도의 수출량이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무려 43,200만 달러(한화 5,800억 원)으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전남의 놀라운 수출 실적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바로 46년째 김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감로수산의 정경섭 회장이다. 그는 대한민국 김 산업의 산증인이자 대부로 불린다. 그간 해남군 수협 이사, 대의원, 어촌계장을 거쳐 해남군 수산조정위원회 위원, ()한국마른김생산자연합회장, ()한국김산업연합회장 등을 역임하며 해남을 출발로 전남 전체 김 산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202112월부터 시행 중인 김 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제정을 이끌어낸 숨은 주역이기도 하다. 무려 3년간 중앙부처와 국회를 방문하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오랜 숙원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 김 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김 수출 산업의 선봉장, 정경섭 회장을 만나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김 양식장에서 보고 배워

정경섭 회장의 지역적 위상을 알기 위해서는 그리 복잡할 것이 없다. 그가 거주하는 해남 화산면 사포마을 사람들은 정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 비석을 세워주겠다는 말을 한다. 사후에 비석을 세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때이다. 지금 현재 해남 주민들이 정 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이 정도이다. 정 회장은 돈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다. 돈을 엄청나게 벌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처음부터 김은 그의 인생 자체였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지금도 자손만대를 살리기 위해 공장을 돌리고 바다를 살리기 위해 지금의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가 이뤄낸 성과는 상당하다. 그가 운영하는 김 가공 공장인 감로수산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해남군 군민의상 수상(2003), 4회 전라남도 농수산물 백만 불 수출탑 시상(2003), 전라남도지사 표창(2011), 국토해양부 장관 표창(2012), 해양수산부 장관 표창(2016), 산업포장(2021) 등을 수상하며 각종 상을 쓸어 담듯이 받았다.

저희 집안은 지금 4대째 김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제가 3대이고 장남이 4대째입니다. 부모님, 조부모님들까지 모두 김 양식을 했으니 어떤 면에서 저는 김을 위해 태어났고 김을 위해 살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40여 년 전만 해도 어민들의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할아버지께서 또랑가에 대나무를 박고 김이 자랄 수 있도록 틀을 만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그렇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김 생산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며 성장해 온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김이 전 세계 120개국에 수출된다고 하니 정말로 감개무량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성장에 제가 조금이라도 일조했다는 점이 정말로 자랑스럽습니다. 예전에 매일 김하고 파도와 싸우는 눈물 어린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 김 산업의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너무 어린 시절부터 김 관련 일만 하다 보니 학업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고 한다. 젊음을 현장에서 보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배움에 대한 깊은 갈증과 한이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지나고 난 뒤 늦게나마 학업을 시작해 전남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전해수 생산 기계도 개발

정경섭 회장은 그간 국내 김 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해 지속적인 기술 연구와 설비 투자에 집중해 왔다. 특히 생산 현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친환경적인 양식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과는 히트펌프식 건조 설비의 구축이다. 정 대표는 과거 연료비 절감을 위한 히트펌프 개발 과정에서 수십억 원의 투자 손실과 실패를 겪기도 했으나 연구를 지속한 끝에 결실을 보았다. 이 설비는 기존 전기료를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었으며 여기에 불순물 제거와 살균 처리 기술을 더해 국내산 김의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술 혁신은 양식 현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정 회장은 김 양식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무기산(염산)을 대체하기 위해 전해수 생산 기계개발에 공을 들였다. 직접 개발비를 투자해 전문 업체와 3년간 공동 연구를 진행한 결과 성공을 거두었고 실용화도 이뤄냈다.

또한 그는 과거 김 양식 어장 재배치와 외연 확대를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한 적도 있다. 국내 김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현재의 밀집된 어장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일부 김 어장들은 시설물이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어 생산 효율이 떨어지는 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바둑판 형태로 규격화해 재배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렇게 하면 어장 사이의 간격을 충분히 확보하고 바닷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김의 생육이 좋아지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러한 체계적인 정비는 김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황백화 현상을 예방하고 품질을 높이는 핵심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장 재배치로 인해 우려되는 생산량 감소 문제에 대해서는 신규 어장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 회장은 연안을 벗어나 외해로 양식 범위를 넓힐 수 있는 면적이 충분하다고 보았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역 간 어업 구역 설정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정 회장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김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법적 근거인 김 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김산업법)’ 제정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해당 법안은 김 산업의 체계적인 품질 관리와 수출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발의되었으며 정 회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와 국회에 전달하며 법안 통과를 뒷받침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2012월 국회 본회의에서 김산업법이 통과되었으며 이듬해인 20211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를 통해 김 산업이 단순 양식업을 넘어 가공과 수출을 아우르는 독립된 법률 체계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정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한국 김이 검은 반도체라 불리며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곳곳에 장애물이 있었고 여러 힘든 일들이 그를 가로막아섰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다.

 

반평생을 김과 함께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무모한 도전도 많았고 거센 풍랑을 만난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던 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를 믿고 응원하며 곁을 지켜준 가족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제게 가족은 그야말로 삶의 귀한 인연이자 가장 큰 버팀목입니다. 더불어 앞으로도 제가 가진 작은 힘이나마 보태어 우리 김 산업이 꾸준히 성장해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해남 김이라는 브랜드가 전 세계에서 더욱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은 물론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이 깨끗한 바다를 건강하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해양 환경을 지키는 일에도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나눔 활동과 마을 이장

지역 사회를 향한 정 회장의 나눔 활동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265월 열린 '53회 해남군민의 날' 기념행사에서 그는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기금 1,000만 원과 고향사랑기부금을 전달했다. 또한 그는 20251월부터 사포마을 이장님으로 불리고 있다. 당시 사포마을은 주민들 사이의 크고 작은 갈등과 민원 문제로 이장 자리가 비어 있는 상황이었다. 주민들은 마을을 화합으로 이끌 적임자로 정 이장을 추천했고 그는 고심 끝에 1년이라도 마을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이장직을 수락했다.

 

정 이장은 취임 전 주민들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개인적인 서운함이나 민원이 있으면 반드시 이장을 통해 먼저 이야기하고 마을 회의를 통해 공정하게 풀어가자는 것이었다. 이는 주민들끼리 직접 부딪쳐 감정이 상하는 일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장이 된 후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 앞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할까 봐 사비를 들여 미끄럼 방지 타일을 깔았고 김 트럭이 다니기에 너무 좁았던 마을 길을 넓히기 위해 본인 소유의 땅을 흔쾌히 내놓았다. 여기에 공사비 3,500만 원까지 직접 부담해 길을 넓히자 주민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또한 마을 정자 주변의 지저분한 나무들을 정리하고 향기로운 은목서를 새로 심어 깨끗한 쉼터를 만들었다. 그는 농사 혜택을 주민들이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사업을 공부하는가 하면 비가 오면 논이나 축사가 잠기지는 않는지 현장을 살피고 면사무소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 무엇보다 정 이장이 공을 들이는 부분은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다. 그는 주민들의 서운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며 갈등을 푸는 중간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매달 나오는 이장 수당 역시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서 마을을 위해 다시 내놓을 예정이다. 그는 이장 업무가 생각보다 많아 놀랐지만 주민들이 서로 웃으며 지내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주민 화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감로수산은 가족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정 회장의 아들인 정선도 대표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이 각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 중이다. 딸인 정선미 이사와 사위 김홍수 이사, 그리고 며느리 배현미 실장 등이 경영진에 합류해 체계적인 가족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정경섭 회장이 평생을 통해 이뤄낸 김 산업이 이제 자녀들을 통해, 그다음 세대를 통해 이어 나가길 바란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