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성격을 크게 ‘내향적이다’와 ‘외향적이다’로 나누었다. 이는 과거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의 구분인 내향인(Introvert)과 외향인(Extrovert)의 구분에 근거한다. 전자는 내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는 사람을 말하고, 후자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람들을 만나는 방식, 세상을 대하는 방식, 조직 생활에서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내향인도 아니고 외향인도 아닌, 이향인(Otrovert)이라는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임상심리학자이자 뉴욕시통합정신의학연구소 설립자인 라미 카민스키(Rami Kaminski)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친화력 또한 우수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들의 에너지 충전 방식은 매우 선택적이다. 극단적인 고립 상태나 대규모 집단 모임보다는, 소수의 친밀한 인원과 대화를 나누거나 적당한 소음이 존재하는 카페와 같은 공간에서 정서적 안정을 얻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점은 내면적으로는 특정 조직에 완전히 동화되거나 강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향인만의 독특한 심리적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 모인 자리에 피로함 느껴
한국은 기본적으로 ‘집단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고향이나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 또한 ‘내 집’이나 ‘내 엄마’ 대신에 ‘우리 집’, ‘우리 엄마’라는 언어 습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라는 강렬한 집단주의가 뿌리 박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집단주의는 한국만 강한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강할 뿐, 인간은 기본적으로 소속에서 자신의 안정감을 찾기도 한다. 자신이 집단에서 배제되고 소속감이 없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에서 결이 다른 사람들, 즉 ‘비소속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삼은 사람들이 바로 이향인이다. 이들은 공동체 내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하면서도, 심리적으로는 조직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는 독자적인 위치를 유지하는 특성을 보인다. 관계의 양상 측면에서 이향인은 다수가 참여하는 집단적 활동보다 일대일 혹은 소수의 인원과 깊이 있게 교감하는 관계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또한 이들은 능동적인 참여자보다는 주변을 살피는 관찰자의 위치에 머무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성향은 기존의 관행이나 대중적인 유행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만 이러한 이향인의 특성을 단순한 ‘사회 부적응’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며 스스로 내면의 풍요로움을 찾아내는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이향인’의 개념은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자아’라고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성향을 지닌 이들은 다수가 한자리에 모이는 상황 자체에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불과 4~5명 정도의 소규모 모임에 참석하더라도 금세 피로감을 호소하며, 대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한 채 겉도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이들에게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타인의 시선과 반응을 살피는 과정이 과도한 에너지 소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일상적인 안부나 단순한 정보를 주고받는 대화에서는 큰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그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일 수밖에 없다. 반면 이들은 불특정 다수와의 얕은 만남보다, 서로의 진심과 깊은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수와의 소통을 지향하며 그 과정에서 정서적인 충족감을 얻곤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주변에서는 이들을 소극적이라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만의 확실한 소통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매우 효율적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관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회의적인 시각도 있어
그렇다고 이런 이향인들이 공동체 전체의 발전에 관심이 없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들은 집회 참여에 있어서도 독특한 방식을 보인다. 전면에 나서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주로 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집회의 주제 자체에는 매우 큰 동의를 하지만, 그렇다고 직접 참여를 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집회의 흐름이나 결과에 큰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이른바 ‘이향인’은 선천적인 관찰자로서의 고유한 기질을 지닌 존재로 정의된다. 이러한 성향을 보유한 개개인은 새로운 환경이나 낯선 집단에 노출되었을 때, 즉각적으로 타인에게 다가가 교류를 시도하는 외향적 공격성이나 반대로 자신을 전적으로 고립시키는 내향적 회피를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특정 거리를 유지한 채 주변을 세밀하게 탐색하고 상황의 흐름을 살피는 독특한 적응 양상을 보인다.
이들은 타고난 관찰력을 도구 삼아 다양한 데이터와 경험을 축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얻게 된 외향인이 지닌 추진력과 사교성, 그리고 내향인이 가지고 있는 깊이 있는 성찰과 신중함이라는 행동적 특성을 자세하게 분석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자신에게 필요한 강점만을 선별적으로 학습하고 습득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내면적 성격에서 양극단의 특성을 적절한 비율로 수용하고 내면화한다는 이야기다.
다만 인간이 가진 광범위한 성격 유형을 단순히 외향인 혹은 내향인이라는 이분법적 틀 안에 가둘 수는 없다. 따라서 ‘이향인’이라는 개념 역시 매우 독립적이고 차별적인, 그 자체로 완성된 성격 유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성격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빈틈을 메우고 보완하는 보조적 수단으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성격 분류법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곤 한다. 단순히 사람들의 자기 확인 욕구를 자극하여 관심을 끌려는 마케팅 수단이라거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실체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행처럼 번지는 성격 테스트가 자칫 사람을 틀에 가두는 도구로 전락하듯, ‘이향인’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 속에서도 새로운 성격 개념을 반기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그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기준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비로소 이해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듯한 기분에 혼란스러워하던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심리적인 안도감과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반응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많은 전문가는 성격을 단순히 몇 가지 유형으로 규정짓는 일에만 몰두하기보다, 이를 활용해 타인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때에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임이 틀림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생활 방식을 스스로 찾아 나갈 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와 내면의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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