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건축사사무소 미가온의 이순미 대표가 설계한 ‘영암가족복합센터’가 (사)대한여성건축사회 주최 ‘제1회 여성건축사 건축상’에서 공공분야 최고상을 수상했다. 지난 2025년 11월 개관한 영암가족복합센터는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됐다. 이곳에는 가족 상담 및 교육, 소모임 등을 지원하는 가족센터와 공동육아나눔터, 다목적 소통 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이 건축물은 공원 부지 모퉁이의 삼각형 대지라는 물리적 한계를 창의적으로 극복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자칫 폐쇄적일 수 있는 삼각형 평면의 중심부를 소통의 핵심 거점으로 조성했으며, 특히 지상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피난계단을 오픈형으로 설계해 공간의 개방감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순미 대표는 지난 20년간 ‘약자를 위한 건축적 포용’이라고 할 수 있는 건축의 공공성 및 사회적 책임 실천에 앞서 온 것은 물론, 지역 건축 문화의 국제화 및 글로벌 위상 제고, 미래 건축 인재 양성 및 시민 참여형 건축 문화 대중화에 큰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순미 대표를 만나 그녀의 건축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여성 건축사의 섬세함과 포용력, 공간의 한계를 넘다
(사)대한여성건축사회가 올해 처음 제정한 ‘대한여성건축사 건축상’은 동시대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공간적 실천을 조명하고, 여성 건축인의 작품 세계와 전문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건축적 완성도와 창의성, 공공성, 장소성, 사회적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심사한 이번 시상에서 이 대표의 수상작은 오늘날 건축이 제안할 수 있는 가치와 실천 가능성을 보여준 훌륭한 사례로 꼽혔다. 단순히 미적 완성도를 넘어, 사용자의 삶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여성 건축사 특유의 포용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평소 이 대표는 대지의 악조건 속에서도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안목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수상 역시 이러한 그녀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투영된 결과다.
"설계를 진행할 당시 부지가 가진 조건이 쉽지만은 않았고 공간 활용에도 여러 제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내부에 충분한 자연광이 스며들도록 천창을 내고, 답답하게 막혀 있는 피난계단을 개방형 구조로 바꾼 이유입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지어지는 공공건축은 단순히 기능만 충족해서는 안 됩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공간을 제공하여, 주민들이 자기가 사는 마을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전남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한 이 대표는 모교 건축학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사)장애 없는 세상 만들기 상임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건축의 공공성 실천, 약자들이 겪는 불편을 개선하다
이 대표는 2007년부터 ‘장애 없는 세상 만들기(생명의 존엄성과 평등을 포용하는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실천해 왔다. 이 프로젝트는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 이동 약자가 도시 공간에서 겪는 불편을 개선하고, 누구나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지역 사회에 확산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2026년으로 20주년을 맞은 이 활동은 단순한 일회성 봉사를 넘어 지역 대학의 정규 교육 과정과 연계될 만큼 훌륭한 교육적·사회적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까지 1천 명이 넘는 학생이 참여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건축 및 도시 전문가로 성장했다.
또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소통과 문화가 있는 도시 경관 만들기’ 활동에 참여하며 삭막한 도시를 주민 친화적인 환경으로 바꾸는 재능 기부도 이어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지난 2013년 광주광역시와 ㈜건축사사무소 미가온이 함께한 프로젝트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은 지역 건축 문화의 세계화로도 이어졌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사)한국건축가협회 광주전남건축가회 최초의 여성 회장을 역임하며 광주 건축대전을 ‘광주_아시아 국제건축대전’으로 격상하면서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을 품으면서 아시아 여러 국가의 건축가와 학생들이 참여했으며, 해외 건축 전문가들이 심사 위원으로 함께하면서 국제적 성격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건축 문화와 도시 환경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평가받았다. 이와 함께 2024년에는 세계적 권위의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을 광주에 초청해 특별 강연을 개최한 일화는 수도권에 집중된 건축 문화를 지역으로 확장한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외에도 일반 시민과 함께하는 우수건축물 탐방 및 건축학교 운영을 통해 건축 문화의 대중화에도 앞장서 왔다.
창의적 활동, 건축의 매력에 빠지다
지금은 건축계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그녀지만, 학창 시절의 첫 목표는 의대 진학이었다. 주변에 건축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겪은 슬럼프로 인해 진로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고, 평소 좋아하던 그림과 수학을 접목할 수 있는 건축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나의 정답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공간과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점"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서울의 명신건축, 소라건축사사무소에서 약 14년간 실무를 쌓았다. 여성 건축사가 극히 드물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 건설 호황기와 맞물려 아날로그 도면부터 디지털 설계까지 현장의 치열함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역량을 키웠다. 세부 디테일 작업에 강점을 보인 그녀는 설계뿐만 아니라 현장 감리에도 직접 참여하며 시공과 공간 구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다졌다. 이후 2000년 광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지역 공공 프로젝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축으로부터 배웁니다"
오랜 기간 사회적 실천을 이어오며 이순미 대표가 정립한 단단한 철학은 ‘건축은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일이죠. 처음에는 제가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베푼다고 생각했지만,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가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대표는 앞으로도 외형적 완성도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만족과 편안함을 느끼는 사용자 중심의 ‘진정성 있는 건축’을 이어갈 계획이다. 후배들과 경험을 나누고 건축의 본질을 고민하는 모임도 구상 중이다.
"단점도 충분히 장점으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문제는 결국 해결되는 과정에 있으니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녀의 굳건한 가치관이 깃든 건축물들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 곳곳에 따뜻한 긍정의 에너지를 전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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