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 한국 자체가 제대로 먹고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기에, 장애인에 대한 돌봄까지 본격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이후 2010년대부터는 장애인 권리 실현이 구체적인 제도로 정착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연금법이 제정되었고,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장애인활동지원법이 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한국 장애인 지원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녹색재단(Korea Disability Green Foundation)의 정원석 회장이다. 그의 이러한 활동들이 인정받아 지난 4월 20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46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정원석 회장은 ‘제30회 올해의 장애인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 역시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서 소아마비가 시작되어 전신마비 상태가 되었다. 초·중·고 당시에는 목발을 짚고 학교를 다녔으며, 사회활동을 하던 중에는 두 어깨 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았고, 공황장애까지 경험했다. 또한 척추측만증으로 인한 신경 눌림으로 오른쪽 고관절 부분에 통증이 생겨 오래 앉아 있기도 힘든 상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장애인을 위한 자신의 활동을 줄일 생각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더 활발하게 생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인한 의지로 대한민국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고 있는 정원석 회장을 만나보았다.
‘장애인 숲’에서 ‘녹색 복지’까지
정원석 회장의 별명은 ‘공익인간(公益人間)’이다. 그간 시민운동가, 인권운동가, 정책전문가, 통일전문가, 환경전문가, 사회복지실천가, 문화예술가로서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모든 활동의 중앙에는 바로 한국장애인녹색재단(이하 ‘재단’)의 활동이 놓여 있다.
2011년 8월 설립된 재단은 생명과 평화, 그리고 환경을 기본 이념으로 삼아 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다양한 녹색사업을 전개해 왔다. 생명존중의 가치를 확산하고 인류 평화와 녹색성장에 기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녹색복지국가를 구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주요 시·도에 지부를 설치하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이다. 수많은 회원과 함께 환경 보호 활동에 앞장서며 국민의 기본 건강권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환경 사업을 매개로 한 장애인 일자리 창출과 전문적인 녹색환경 교육, 그리고 다양한 사회기여 프로그램을 활용한 공익사업 등 다각적인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히 따뜻한 보호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사회적 수혜자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물론 복지적 차원의 접근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은 장애인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과 사회적 기여 가능성을 제한하는 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적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단순히 도움을 받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탈피하여,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주체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히 현대 경영의 필수 요소인 ESG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은 더 이상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업과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과제들을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당당히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저 또한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자 협력자로서 본인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복지를 넘어 경제적 자립으로
재단은 설립 이후 환경 개선과 장애인 자립을 연계한 다각적인 활동을 전개하며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재단은 사회공헌형 산림탄소상쇄사업 등록 단체로서 기능성 포플러나무와 같은 환경 정화수를 식재하여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저감에 앞장서고 있다. 이는 아토피, 비염, 천식 등 환경성 질환 예방과 자연 생태계 복원을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민관 협력을 통해 매년 한강 유역에 1,000그루의 나무를 심어 ‘장애인 숲’을 조성해 왔으며, 현재까지 총 5개소의 산림탄소상쇄 도시 숲을 구축했다. 조성된 숲은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 감소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실질적인 기반 마련에도 주력하고 있다. 재단 산하의 중증장애인 생산품 생산시설인 ‘녹색섬유사업단’은 보건복지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 중이며, 이곳에서 근무하는 30여 명의 장애인 근로자들은 각종 피복 제품을 생산하여 국방부와 주요 관공서에 납품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장애인들이 경제 주체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울러 전문 박사급 인력으로 구성된 녹색기술연구소를 통해 취약계층을 위한 친환경 일자리 모델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SGS인증원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행복하고 평등한 사회 구현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며 향후 활동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정 회장은 한국 장애인 인권 운동의 흐름을 바꾼 매우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시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의 초대 회장을 지내며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직업재활’ 시스템의 초석을 놓았다. 특히 중증장애인이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또한 정 회장은 과거 장애인들에게 생소했던 ‘정치적 자기결정권’을 확립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장애인유권자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이는 장애인을 단순한 시혜의 대상에서 능동적인 사회 참여의 주체로 변화시킨 상징적인 행보로 꼽힌다. 오늘날 장애인 인권 보호의 법적 근간이 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서도 그는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장애인들의 권리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를 위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오랜 기간 시민운동과 사회 공헌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다수의 주요 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00년에는 시민운동 활동을 통해 ‘서울특별시 자랑스러운 시민상(시민화합부문)’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자원봉사 분야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을 수여받았다. 환경 보호와 나눔 문화 확산에도 기여하며 2013년 ‘제8회 대한민국 나눔대상’에서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4년에는 ‘서울시복지상’ 장애인 인권 분야 우수상을 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2015년에는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으며 장애인 복지와 인권 증진을 위해 힘써온 그간의 노력을 대외적으로 공인받기도 했다.
끊임없는 학구열이 만든 전문성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 유권자 운동을 시작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1호 비영리법인을 설립했던 일입니다. 장애인 복지를 실현하는 가장 빠른 길은 결국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협력하여 공명선거 실천과 투표 참여 독려, 부정선거 감시단 운영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장애인의 정치적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았습니다.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고 이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서명식에 직접 참석했던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벅찬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성 장애인을 위한 세심한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여 여성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시설을 선택할 때 느끼는 깊은 고민과 여성만의 독립된 생활 공간에 대한 절실함을 반영해 국내 최초로 여성 전용 장애인 단기 거주 시설인 '포도원복지센터'를 설립했습니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포도원복지센터에서 원장으로서 지난 12년 동안 무보수로 봉사하며 시설을 이끌어 왔습니다. 애초에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었으며 오로지 장애인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다는 진심 하나로 묵묵히 이 길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는 그간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정 회장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뒤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칼빈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Ph.D.) 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적 토대를 다졌다. 그는 이론적 지식과 현장 실무 능력을 고루 갖춘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배우자와 자녀, 사위까지 온 가족이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외 활동에서도 두드러진 리더십을 발휘해 온 그는 전국사회복지대학원총연합회 회장과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총동문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관련 분야의 네트워크 강화에 기여했다. 현재는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으며, 한국ESG상생포럼 상임대표를 맡아 사회적 가치 확산과 상생의 생태계 구축을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도전이 만들어내는 희망과 용기
정 회장은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말한다.
“저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은 제가 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는 성구입니다. 제가 장애인 복지 업무에 투신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말씀이 주는 용기와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완수하고 싶은 과업이 참 많습니다. 특히 현재 우리 사회는 장애 노인 문제가 매우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책이 전무한 실정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장애노인회’ 설립을 추진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결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실제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장애인이 노년기에 접어들어도 이들을 위한 별도의 지원 체계나 변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장애노인의 경제적 빈곤 문제, 건강과 의료 문제, 돌봄 공백 문제 등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사회적 대안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제 ESG는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필수 전략입니다. 공시 의무와 공급망 연대 책임이 현실화 된 지금, 이를 위해 ESG제품인증재단을 통한 장애인 생산 제품의 신뢰도를 확보하여 판로를 개척하고, 장애인을 ESG 실무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여 장애인이 경제적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가치와 경쟁력이 공존하는 상생 생태계를 구축하겠습니다.
정 회장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한다. 그는 평소 도전을 멈추지 않는 자세가 인간에게 용기와 희망을 부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천하는 도전가로서, 또한 ‘공익인간’으로서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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